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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교동생 일본의 경제발전 빌드업
2025-12-15 14:52 | 댓글 : 0

[요약]

한국전쟁 특수(1950 ~ 1953) : 전쟁의 폐허에서 완전한 산업국가로 부활

베트남전쟁 특수 (1952 ~ 1973) : 완전한 경제 강국

석유파동(1972 ~ 1980) : 경제대국 가속화

신자유주의(1982 ~ 1986) : 세계 2위의 경재 대국

서구의 기술 공여, 무단 복제의 꿀단지를 혼자서 다 독차지 하였다.




1.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본을 부활 시킬수 밖에 없었던 미국의 입장 


일본은 태평양 전쟁시에 그야말로 전국이 초토화 되어 버렸다.

미국의 폭격기가 더 이상 폭격할 곳이 없어, 논밭에까지 폭탄을 떨구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핵폭탄이 떨어졌던 히로시마만 집중적으로 부각되었지만, 실상이 전국이 히로시마와 비슷한 수준으로 작살이 났다.

그런 일본이 한국전쟁 발발 1년만에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했을 정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미국내 군순 산업 시설중 비전투 물자의 생산 공장을 모조리 일본으로 이전했다.

공장 설비뿐만 아니라 인력까지 대거 일본에 투입해 일일히 다 가리켜가며 기술을 전수해 미국을 위한 최전방 바로 후방의 군수 공장들을 가동시킨 것이다.



왜 미국은 일본에 이렇게까지 군수 설비를 이전했나를 이해하려면 태평양 전쟁 시절의 미국의 힘겨움을 알아보면 이해 할 수 있다.

미국이 태평양 전시 기름의 보급 상황을 보면

미국 본토에서도 원유가 나기는 하지만, 막대한 미군함정을 위한 기름을 보급하려면 부족하여, 당시 미국 이외의 최대 원유 생산국인 이란에서 부터 원유를 가져왔다.

이란에서 원류를 실은 유조선은, 주전장인 남태평양과 가장 가까운 루트인 인도네시아를 일본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과 할 수 없었다.

대서양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루트인 수에즈 운하와 지중해가, 주축국인 이탈리아에 의해 차단 되었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프리카를 한바퀴 돌아 대서양을 가로질러 미국 남부에 하역 된 후 정제되었다.

정제된 기름은 다시 유조선에 실려 카리브해를 지나 파라나 운하를 통과, 하와이에 도착, 하와이의 기름 창고에 보관된 후 

다시 하와이에서 기름을 싣고 남태평양을 가로질러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항에 다시 한번 하역 보관된다.

이후 전술 수송 유조선에 실려 태평양의 각 해역군에 육상, 해상 급유를 했다.

만약 전투중이라면 이틀에 한번씩 이런 급유를 받아야 했다.

미국은 수송선만 무려 1만1천척을 운용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World_War_II_United_States_Merchant_Navy)

기름 하나만으로도 이런 엄청난 물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보급품을 호송하기 위해 막대한 수송선단을 유지했고, 이 수송선단을 해상 호위하기 위한 호송용 호위항모만 100여척을 운용했을 정도다.

태평양전쟁을 미국이 수행했던 과정을 보면 미국이 일본에 엄청난 시설,기술 투자를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란걸 당연히 납득하게된다.  




2. 일본의 경제 부상을 더욱더 가속화 시킨 베트남 전쟁 & 석유파동


미국이 한국전쟁 수행을 위해 일본을 완전한 군수공장을 건설했고, 그게 1953년 휴전까지 지속된다.

게다가 이렇게 1946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1952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전쟁으로 휘말렸고, 미국은 1차 베트남전쟁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군 물자 보급의 80%를 담당하고 있었다.

프랑스에 보급된 그 물자들은 어디서 생산되었을까?

무기류가 아닌 그외의 물자들은 100% 일본산이였다.

이미 가까운 일본에 군수시설을 만들어놨는데, 다른데서 가져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미국은 베트남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는 커녕 오히려 급속도록 증가시켰는데, 이 물자들도 모두 일본산이였다.

이 일본산 보급은 미국인 베트남에서 철수한 1973년까지 지속되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참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을 1973년에 또 다른 포인트가 추가된다.

바로 중동전쟁의 발발이였다.

1973년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벌어졌고,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 삼아 석유 파동을 일으킨다.

이로인해 결국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되었다.

인플레이션을 발생하면 세계의 시장의 흐름은 저가 상품으로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다.

그 당시 저가 상품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는 바로 "일본"이였고

베트남전 특수 이후로 바로 이어진 석유파동 특수를 다시 한번 겪으면 호황을 누리게 된다.

게다가 1979년 이란혁명의 발발로 2착 석유 파동을 또 다시 겪으면 

일본의 호황은 다시 한번 연장된다.





3. 한발 더 남았다. 신자유주의의 시대 


일본의 미친 호황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이 발발한다.

포클랜드 전쟁은 정치인생 끝을 바로보던 영국의 대처 수상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며 대처리즘이 세상의 대세가 되게 만든다.

대처리즘 즉, 신-자유주의는 일본에게 또 다시 끝나지 않는 호황을 갖다 준다.

물론 이때부턴 일본만 혼자 다 먹진 못하고 드디어 아시아의 4용도 같이 동참하게 된다.

자유주의란 모든 국가가 모든 산업을 다 하려고 들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면 살기 힘드니, 각 국가가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자는 것이였다.

1차 산업 광업, 농업, 축산업을 잘하는 국가는 그것만 하고 

2차 산업 즉 제조업을 잘하는 국가는 그것만 하고

3차 산업 특히 금융업 잘하는 국가는 그것만 하자는 

즉, 경쟁을 회피하자는 것이 신-자유주의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서 결과를 보니

1차 산업만 하는 국가는 발전을 못하고 항상 그 모양에서 벗어나질 못했고

3차 산업만 하는 국가들은 국가 전체를 발전했지만, 국가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일자리 부족에 허덕이며

오로지 2차 산업 국가들만 쭉쭉 성장했다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됩니다.

게다가 2차 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1차 산업쪽으로 진출하며(원료의 안정적 공급, 노동자를 위한 식량), 이런 산업 사슬을 지원하기 위한 3차 산업(금융,보험 지원)도 발전하게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결국 1986년 프라자 호텔에서 이 모든 과정을 깨달아 버린 미국이 일본의 손목을 비틀어 버릴 때까지 

1950년 부터 일방적으로 일본만을 위한 경제 호황을 1986년까지 누리며 발전해 온게 일본 경제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위 기간동안 하나 더, "묻고 더블로"를 만들어준 상황 (첨단 기술의 폭포)


일본은 지독하게 운이 좋은 국가였다.

뒤늦게 제국주의의 뛰어든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 되었다.

미국은 일본은 자신들의 제국주의 식민지로 만들여고 했었다.

4-1. 미국의 남북전쟁

근데 하필 그 시기에 미국의 남북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전쟁 북구 시기까지) 일본의 식민지화는 지체 되었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고 느닷없이 무기 수요가 사라진 미국의 군수 공장들이 우르르 일본으로 몰려들어 

일본의 군수기술(+산업기술)까지를 전수하게 된다.

4-2. 여기에 더블어 영국과 러시아간의 그레이트 게임이 드디어 동아시아까지 도달하면서 일본은 영국의 하청국가로써 러시아를 상대하게 되고 이덕에

영국의 군수기술(+산업기술)까지를 전수받게 된다.

4-3. 한국전쟁으로 미국의 군수기술(+산업기술)이 미국에 의해 강제로 주입되다 시피 전수 되었다.

4-4. 이렇게 서양 기술의 달콤함을 맛본 일본은 세계적인 기술 보호 장치가 없던 시절 서양의 기술들을 무단 복제하여 일본의 값싼 가격과 결합하여 경쟁상대가 전혀 없던 시절 

혼자 다 독차지 하고 있었다.


위와 같은 특혜는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이름의 국제적 협정, "지적재산권"이 확립 될 때까지 지속 되었다.

무려 한세기 이상을 서양의 기술 공여의 혜택을 혼자서 다 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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